소아시아성지연구-라오디게아교회 조근식 Hit : 2421 


라오디게아 교회

리커스(Lycus) 계곡에 위치해 있는 라오디게아는 주전 3세기 중엽에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2세에 의해 최초로 건설되었고 그의 부인 라오디케의 이름을 따라 도시명이 붙여졌다. 도시 근교를 흐르고 있는 리커스 강은 이 지역의 농수 공급의 중요한 원천인 메안데르(Meander)강의 지류였다. 대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선정된 곳이라면 무역 및 군사 경로로서 지리적 이점이 탁월한 곳이기 마련인데, 이 곳 역시 에게해 연안으로부터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향하는 경로를 이어주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셀류커드 왕조는 북쪽의 마케도니아 안티고너스 왕조와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서부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 도시를 요새화하였고, 이를 통해 라오디게아는 무역, 교통,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 도시에는 본토 원주민들과 그리스인들 그리고 안티오커스 2세의 군대에 고용되어 있던 용병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전 190년의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셀류커스 왕조는 로마에 패하였고, 로마는 이 전쟁에서의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페르가뭄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Eumenes 2)에게 라오디게아를 하사하였다. 그리고 주전 133년에는 페르가뭄의 마지막 왕이었던 아탈로스 3세가 라오디게아를 로마에 헌납함으로써 이 도시는 서부 아나톨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라오디게아는 발달된 무역 경로와 풍부한 강수를 바탕으로 해서 쉽게 개발될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주요 지진대 위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해서 종종 자연재해들로 인해 발전해 나갈 수가 없었다. 스트라보는 라오디게아가 지진들로 인해서 ‘구덩이로 가득 차 버린’ 도시가 되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가장 큰 자연재해는 주후 61년에 일어났고 이로인해 도시 전지역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한때 라오디게아인들은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전을 건설하고자 하였다가 자금을 충당하지 못해서 계획을 포기한 일이 있다. 그러다가 콤모두스(Commodus, 180-192)황제 때에는 ‘전각지기(temple-keeper)’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많은 신전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로마가 평화를 구가함으로써 생겨나는 경제적 붐을 타고 라오디게아는 경제적 사회적 특수를 누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신전들을 세울 수 있는 재원이 생겨났던 것이다.

라오디게아의 역사에 대한 정보들은 고고학적 발견물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관계로 기록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곳 라오디게아에서는 제우스와 아스클레피우스에 대한 제의가 가장 대중적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로마 이전의 아나톨리아 시대에 행해졌던 달신(moon-god men)숭배로부터 유래한 듯하다. 라오디게아는 의료기술의 중심지로도 유명하였다. 특별히 귀와 눈에 관한 의료기술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의료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질병에 사용하는 의약품은 알약형태로 제조되어 세계 각처로 수출될 정도였다. 양모산업은 라오디게아 재정의 또 다른 주요 수입원이었다. 로마의 플리니(Pliny)는 이곳의 양모에 대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검고 윤이 나기까지 하여 단연 최고의 품질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검은 색깔은 자연적인 것인지 염색으로 인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로마시대와 비잔틴시대 이후 라오디게아는 비잔틴과 투르크 사이의 전장이 되어버렸고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갔다. 이 지역에서는 여러 개의 십자가 들이 발굴되었는데, 적어도 5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 이곳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는 ‘시리아 문(Syrian Gate)’라고 불리는 곳 근처에 있다. 3세기 초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님파이움 유물은 아마도 그 일부가 교회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유물은 주 도로변에 위치한 도시 중심지에 세워져 있었는데, 여러 번의 개축과정을 거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그러나 7세기 이후에는 사산왕조와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폐허로 방치되었다. 이 건물은 정사각형의 물 저장고(basin)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내부에는 열주 기둥들이 있고 측면에는 작은 반원형의 분수들이 있었다. 이 분수대의 물은 김나지움에 있는 저수탑과 연결된 두 개의 물 저장고에서부터 공급되었다. 님파이움 내부에는 좀 더 큰 물 저장고가 있었는데, 이것이 교회 건물로 사용되었다.

요한계시록 3장 14-22절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라고 비판받고 있음을 보게 된다. 히에라볼리에서 나오는 온천수가 대략 9㎞정도를 토관을 통해 이동하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가 되는데 요한 계시록의 기자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지근한 온천수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신앙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하여 이러한 지리적인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비유는 부유함을 누리고 있었지만 부요함의 진정한 근원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가 누릴 수 있는 부요함이란 무엇일까?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요하였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비천하고 가련한 상황인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주께로 돌이켜야만 다시 부요해질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요했지만 영적으로 가난했고,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눈 먼 사람과 같았다. 그들의 어떤 화려한 의복으로도 영적인 수치를 가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벗은 몸과 같았다. 그들은 신앙을 거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신앙을 수용하여 박해를 감내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들은 삶에 안주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계시록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안약은 라오디게아의 특산품으로서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프리기아석(Phrygian stone)의 분말가루를 원료로 하였다. 라오디게아는 안약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그 곳의 교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었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다시금 부요해지기 위해서는 ‘불로 연단한 금’을 사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환란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순전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입게 될 ‘흰옷’은 이 지반의 특산품인 ‘흑색양모’와 대조를 이룬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필요로 했던 의복은 단지 육체적인 따뜻함 외에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메시지에서 ‘주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실 때, 누구든지 그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주께서는 영적으로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주를 영접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순종과 믿음을 통해 그 문을 열게 될 때 영원한 행복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켜서 그분과 함께 그의 왕국의 축제에 참여하기를 종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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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11/10/14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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